6월 초여름 비가 오락가락 할 즈음 충북 미원면 가지 기암리로 가는 길은 미원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한참을 달려서 포장도로 끝에서 다시 좌회전하여 비포장도로 경운기가 겨우 한 대 정도 가는 길을 10여분 달려 홍용석 회장의 양잠농장을 찾았다.
도착한 첫 인상은 그저 농촌보다 더 농촌스러운 즉 비포장의 마지막 끝 부분에서야 차를 멈추는 곳, 그곳이 양잠산업의 본거지였다. 수천평의 뽕나무 밭을 끼고 돌아 푸르른 뽕잎의 싱싱함을 보고 당연히 그래야 하지만 무공해 누에를 키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차 한잔을 마신 후 인터뷰를 시작하였다.
홍회장의 이력을 들어보았다.
귀농인 홍용석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주로 일산신도시 세종시 등 대규모 사업지구에서 용지취득에 관한 일과 LH토지주택대학 교수 등을 하였고, 일에 치여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어느덧 세월이 흘러 몇 년 후면 정년이 되어 회사를 떠나야 하는 시기가 다가왔다. 은퇴 후에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고민이 시작되었고, 평소에도 은퇴 후에는 가급적이면 기존에 하던 일의 연장보다는 지금까지는 경험해보지 못하고 개인적으로 새로운 세계를 개척해 나가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전혀 색다른 일을 해보자는 막연한 생각만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타업종의 전문서적을 탐독하고, 이곳저곳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귀동냥을 통해 은퇴 후 준비에 따른 탐색이 시작되었다. 이런 와중에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아 경영학 박사의 학위 취득도 하게 된다. 이것이 양잠산업을 연구하게 되는 디딤돌이 되었으며 연구의 모태가 되었다.
양잠업을 하게 되는 과정을 여쭈어봐도 될까요.
정년이 아직 5년을 남겨둔 2011년 지인들과 모임의 식사 자리에서 알록달록 색깔 있는 누에가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동안 누에는 백색뿐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던 당시에는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고 확인하는 성격이라 직접확인 해보려고 충북농업기술원 잠사시험장을 방문하였다. 그곳에서 살아있는 컬러 누에를 확인하게 되었고, 뽕나무의 유용성과 누에의 다양한 효능과 효과에 대하여 상세한 설명을 접하게 되면서 양잠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양잠은 누에고치만 생산하는 농사의 한 분야로만 생각해왔는데 전업으로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양잠과 관련된 지식이 전혀 없어서 모르는 내용이나 궁금한 것은 메모해서 관련된 지인들을 찾아 물어보면서 해결하기도 하고 인터넷으로 검색도 하면서 충북 잠사시험장을 자주 찾아 도움이 되는 조언을 요청하기도 하였다.
누에를 사육하려면 뽕밭 조성이 우선이었다. 누에는 청결한 곤충이라 오염된 곳에서는 누에농사가 될 수가 없다. 그래서 청정지역에 뽕밭을 조성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당시는 아직 은퇴 이전이라 주로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뽕밭 조성을 위한 탐색에 전념하였다. 이렇게 여러곳을 다니면서 찾은 곳이 충북 미원 기암리 압실 이곳은 전부터 누에사육을 많이 하던 곳으로 뽕밭을 마련하여 뽕나무 묘목을 식재하게 되었다.
양잠농업을 추진하면서 힘들었던 점이나 아쉬움이 있었나요.
양잠을 하기 위해 귀농을 결심하는데 가장 어려웠던 점들은 가족들의 동의를 얻는 것이 힘들었고, 주변의 지인들의 걱정이 많은 부담이 되었다. 다들 오래 버티지 못하고 이내 포기할 것으로 예상하였다. 그러나 처음 시작이 어렵지 익숙해지면 나만의 양잠 노하우로 새로운 세상을 개척할 수 있다는 뚝심 하나로 버텼다.
처음에는 양잠에 관련된 교육이나 기존의 양잠농가 견학을 통해 기본지식을 터득해 나가기 시작하였고 뽕밭이 조성되고 난 이후에는 관리에 온갖 정성을 기울였다. 아무리 그래도 모든 것이 처음 경험하는 일 뿐이라 여러 가지가 서툴 수밖에 없었다. 특히 농약 문제와 전지의 적정한 시기, 주변농가의 농약살포로 갈등과 다툼을 벌이는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상존하는 가운데 누에사육과 오디 수확 과정을 통하여 보람을 느껴보기도 전에 많은 시행착오와 실패를 맛보게 될 때는 실망도 매우 컸다.
실례지만 홍회장의 사업 실적은 좋으신가요.
2015년 은퇴 이후 현재까지 양잠에만 전념하여 기술도 많이 향상되었고 관리도 원할하여 매년 매출도 늘어나게 되었다. 누에와 오디의 생산과 더불어 직접판매를 위해 아내와 함께 2016년 농업회사법인 ㈜오누이를 설립하였고 이를 통해 누에분말을 비롯하여 냉동오디, 오디잼 등 양잠관련 제품을 선보였고 2018년부터는 최근에 붐을 일으키고 있는 ‘홍잠’에 주력하고 있다. 익힌 숙잠인 홍잠은 현재 나 스스로도 먹고 있지만 지인들에게 소개하여 섭취한 결과 좋은 반응을 일으키고 있어 앞으로 장래가 촉망되는 제품이다. 이번에 농촌진흥청에서 홍잠과 참당귀로 인지기능 개선에 대한 복합제품 기술이전 발표가 최근에 나왔는데 현재 우리 농장에서는 참당귀도 재배하고 있다. 서로의 유익한 성분이 함께 어우러져 좋은 결과가 나타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포부와 계획이 있으시다면...
양잠의 이로움을 널리, 그리고 많이 알리고 싶다. 양잠을 제대로 정직하게만 한다면 실패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이나 소수의 영세 양잠농가로서는 힘들고 어려운 일이 산적해 있다. 그러나 지역의 브랜드를 잘살려 특화하는 방향으로 추진해 간다면 큰 문제는 없으리라 본다. 앞으로 양잠으로 귀농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선도 경험자로서 해줄 이야기가 많다.
산업 발전을 위한 최소한의 해결책은 무엇인가요.
잠업농가의 고령화, 치솟는 인건비, 생산물의 제품화와 판매 등 현재 농촌의 문제는 심각하다. 우선 뽕잎이나 오디, 누에사육에 따른 원료생산에는 별문제가 없는데 제품화하고 판매에 어려움이 많다. 이 문제는 모든 양잠 생산자들이 바라는 양잠의 홍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제품의 속성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아무리 훌륭한 제품이라고 권해도 구입하지 않는다. 양잠제품의 소비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보다 더 활발한 홍보가 이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무조건 양잠이 좋다고 홍보할 것이 아니라 홍보전략과 추진계획을 마련하고 집중적으로 실시해야만이 양잠산업이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 진다.
그리고 현재 양잠농가의 고령화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은 젊은 양잠인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래야 양잠산업이 획기적으로 발전하고 변화가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이런 변화가 있어야 양잠산업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신규로 진입하는 귀농이나 귀촌을 생각하는 예비 양잠인들에게 터전을 마련하고 정착할 수 있는 방안이 적극적으로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양잠의 기초기술이나, 양잠의 경영방법, 시기별 대응책 등등이 필요하다. 특히나 잔류농약 또는 중금속검사, 생산이력제 시행 등등 소규모 운영체계인 양잠 농가로서는 매우 버거운 일이다. 이미 경험한 귀농인으로서의 아쉬웠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매우 중요한 일이라 생각된다.
소비자와의 관계설정 방향은 어떻게 접근하고 계신가요.
충북양잠산물홍보관을 활용하여 충청북도 조합원들이 직접 생산하고 제조한 제품을 판매하기 때문에 품질이 우수하고 시중가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들에게 양잠제품을 보급하고 있다. 앞으로 더욱 더 양잠산물의 기능성을 홍보하고 제품의 품질 향상을 통하여 소비자 건강 증진에 기여하여 양잠산업을 위한 단지 조성과 전국의 양잠산업의 메카지를 꿈꾸며 추진하고 있다.
지역사회주민과의 친목 도모와 활성화는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
- 지역사회 학교 또는 연구 기관, 색소폰 동호인들과의 상호 교류도 활발하다. 충북생명산업고등학교 학생들의 실습지를 연 2차례 (5~6월, 9~11월)에 걸쳐 후학들의 학습 효과를 올려주고 있다. 귀농자, 도시 농업자, 약용 작물 회원들간의 친목 도모와 별빛만 보이는 고즈넉한 산골에서 음악회를 연 4회 개최하고 있으며 이 때 농사일에 지친 지역 주민들을 초청하여 그들과의 화합과 소통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또한 예비 양잠업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초대하여 양잠 교육과 실습도 병행하고 있다.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고 양잠산업의 발전을 위해 회장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면서 후학인들 양성에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또한 뽕나무 밭 옆에 산당귀와 산도라지를 대량으로 심어 농가 소득 증대에도 효과를 올리고 있다.
다만 비포장도로가 너무 좁고 비가 오면 길이 망가지기 일쑤여서 차량 통행과 제품 유통에 많은 애로를 겪고 있음에 지방 정부에서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 주어야 농촌 양잠산업의 과학화와 현대화를 추진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들어왔던 비포장 패인 도로를 희망적 생각을 안고 내려왔다.